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드니 포이티어 (문단 편집) == 여담 == * 자녀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 딸 시드니 타미이아 푸아티에이[* Sydney Tamiia Poitier. 1974-.]도 배우로 활동 중이다. 시드니 푸아티에이는 딸의 연기력이 자신보다 뛰어나다며 딸자랑을 한 적도 있다. 그러나 자녀들은 자신처럼 배우의 길을 걷지 않길 바랐다고 한다. * [[제2차 세계 대전]] 중이던 1943년 나이를 속이고 [[미 육군]]에 입대했다. 전투에 참가하진 않고 뉴욕주에 있는 보훈병원에서 복무했는데, 병원이 퇴역군인 환자들을 대하는 태도에 화가 나 제대를 하기 위해 정신병에 걸린 척 연기했다. 담당 군의관에게 이 사실을 고백했지만, 군의관은 이 사실을 동정적으로 보았고 결국 1944년에 제대한다. * 푸아티에이가 확립한 드라마영화 주연급 흑인배우의 이미지는 [[덴절 워싱턴]]에게 계승되었다. 영화계에 큰 발자취를 남긴 푸아티에이에게 2002년 제7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공로상이 주어졌는데 이때 시상자가 [[덴절 워싱턴]]이었다. 워싱턴은 시드니 푸아티에이를 존경하며, 같이 연기해봤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밝히기도 했다. [[https://variety.com/2022/film/features/denzel-washington-tragedy-of-macbeth-oscars-journal-for-jordan-1235146843/|안타깝게도 이 인터뷰가 나온지 몇 시간만에 푸아티에이가 타계했다.]] * 제74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진행에 흑인 여배우 [[우피 골드버그]], 남우주연상은 1964년 푸아이티에이의 흑인 남자배우 첫 수상 후 38년만에 덴젤 워싱턴이 역대 2번째 수상을 했으며, 여우주연상은 흑인 여배우 최초로 [[할리 베리]]가 수상하는 등 흑인 배우들의 잔치였다. 남우주연상을 받으면서 워싱턴은 "40년간 시드니를 뒤쫓았는데 오늘 같은 날 같은 시상식에서 시드니에게 트로피를 시상하고 나서 같은 트로피를 받았다"고 소감을 말했다. 그리고 객석에 앉아 있던 푸아티에이에게 "시드니, 언제나 당신을 뒤쫓겠습니다. 언제나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겠습니다."라며 헌사를 바쳤다. 이에 푸아티에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서로를 바라보고 밝게 웃으며 그날 자신들이 받은 오스카 트로피를 들어올린 모습은 이날 아카데미 시상식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 2022년 [[Apple Originals]] 다큐멘터리 <시드니: 할리우드 전설의 진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분류:미국 남배우]][[분류:미국 영화 감독]][[분류:1927년 출생]][[분류:1950년 데뷔]][[분류:2022년 사망]][[분류:아프리카계 미국인]][[분류:마이애미 출신 인물]][[분류: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분류:6.25 전쟁/군인]][[분류:복수국적자]][[분류:대영제국 훈장 남성 2등급]][[분류:미국 대통령 자유 훈장]][[분류:영국의 기사]][[분류:미국의 영화 각본가]][[분류:미국의 외교관]][[분류: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